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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공부만 해" 학부모, 그게 자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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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공부만 해" 학부모, 그게 자랑입니까



[오마이뉴스서부원 기자]

담임교사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상담의 달'이다. 일과 중엔 틈틈이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저녁 시간에는 부러 찾아온 학부모들과 마주해야 한다. 책상 위 달력은 학부모들과의 상담 약속을 적은 메모로 이미 빼곡하다.

아내의 생일이었던 하루를 빼고는 3월 중 단 하루도 일찍 퇴근한 적이 없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찾아오거나 상담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기도 한다. 3월 초에 한 번 뵈었는데도 다시 오시겠다는 학부모까지 있을 정도니, 상담이 언제 마무리될지 기약이 없다.

상담이라 해봐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전부다. 그들은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듣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한 달도 채 겪어보지 않은 마당에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자녀의 현재 성적과 입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까지는 학부모가 상담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교사의 입장에선 아이의 가정환경과 습관, 성격 등이 궁금하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 자녀의 '갈 수 있는 대학' 이야기로 끝나는 게 보통이다. 상담할 때마다 아이의 작년 성적표와 내신 등급별 지원 가능 대학 배치표를 손에 들고 가는 이유다.

성적 이외엔 끼어들 틈 없는 '상담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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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마주앉으면, 아이가 참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고 자랑하더라는 상투적인 말로 대화가 시작된다.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 한 꼭지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으로 본격적인 상담이 이어진다. 이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성적 외에는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없는, 이른바 '상담 공식'이다.

대학입시를 전제로 한 상담은 시간에 상관없이 늘 허탈감을 준다. 교사랍시고 학부모에게 건네는 대학입시 정보와 학업에 관한 조언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1분만 검색해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뻔한 정보다. 설마 그런 허드레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굳이 시간을 쪼개 학교를 찾아왔을 리는 없을 테니, 배웅을 할 때면 이따금 뒤통수가 따갑기도 하다.

담임교사로서 낡은 레코드판 돌아가듯이 매번 비슷한 말만 되뇌게 되는 고충을 과연 학부모들은 알까. 매일 밤 마주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요즘 들어 퇴근하면 아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일찌감치 곯아떨어지는 것도 상담의 '후유증'인 것만 같다.

학부모들은 대체 자녀의 성적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만족하게 될까. 1등 학부모도, 꼴찌 학부모도 모두 자녀의 성적이 모자란다며 안타까워한다. 각자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에는 점수와 등급이 부족하다는 거다. 성적이 주춤한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된 경우라도 예외는 없다.

자녀의 성적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그렇듯 종착역이 없다. 되레 '옆집 아이'와의 비교를 거쳐 확대 재생산되며, 결국엔 무조건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병적 수준에 이르게 된다. 고슴도치도 자신의 새끼는 귀여워한다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녀의 장점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부모가 칭찬과 격려는 못할망정...

우리 반에는 운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그릴 때면 한두 시간이 불과 몇 분처럼 느껴진다는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수준급의 악기 연주 실력을 갖춘 아이도 있고, 자타가 인정하는 가창력을 뽐내는 숨은 재주꾼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때 가슴이 뛴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의 그런 재능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타고나 '끼'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심지어 '음악과 미술이 밥 먹여주느냐'거나 '음악과 미술을 하는 것처럼 공부를 해보라'는 말을 자녀들 앞에서 서슴없이 건네기도 한다. 부모가 칭찬과 격려는 못할망정 어쭙잖다며 자녀의 재능을 나무라는 꼴이다.

'어설픈 재능을 믿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면서, 되레 담임에게 자녀의 '헛된' 꿈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도 있다. 정작 '어설픈' 건 아이의 성적이고, 성적을 올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게 '헛된' 꿈일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막무가내로 공부가 전부라고 단언한다. 그런 그들 앞에서 '공부가 전부냐'는 반문은 늘 목구멍에서 멈춘다.

오로지 공부만 하라며 자녀에게 집안일 한 번 시켜본 적 없다는 이도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여태껏 밥을 짓거나 설거지하는 건 물론, 빨래와 청소 한 번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과장된 표현이라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입소문난 학원을 찾아다니고 값비싼 과외까지 붙여주며 자녀 교육에 '올인'하고 있는 학부모였다.

듣는 순간 그걸 자랑이라고 하나 싶어 대꾸하기가 난감했다. 그만큼 아이를 귀하게 키웠다는 뜻일 테지만, 지난 한 달 가까이 지켜본 아이의 생활 태도는 부모의 기대와는 아예 딴판이었다. 아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부모 앞에서 그것이 자녀의 미래를 망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차마 꺼낼 순 없었다.

상담시간 절반을 교사인 내가 쓰는 까닭

아이들 중에는 빗자루와 밀걸레를 쥐어줘 봐야 교실을 어떻게 청소해야 할 줄도 모르고, 교복과 체육복을 갈아입고는 교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기도 한다. 십던 껌과 코 푼 휴지를 바닥에 뱉고 버리는 건 예사고, 심지어 자기가 생활하는 교실에다 가래침을 뱉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이쯤 되면 기본적인 생활습관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정작 배워야할 건 배우지 못하고, 주야장천 '엉뚱한' 것만 가르쳐온 적폐가 다 큰 고등학생 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학부모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면, 이런 점 때문일 테지만,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는 문제일 뿐이다. 성적만 올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고 용인되어야 할 일로 치부된다.

어느덧 3월말, 여러 학부모들을 만나다 보니 그래도 요령이 붙었다. 지금껏 8할이 듣는 시간이었지만, 요즘엔 절반 가까이는 내가 쓴다. 교사로서 소신을 당당히 밝히기도 하고, 이따금 주제넘게 나이 든 학부모를 설득하려고도 한다. 그들의 생각이 쉽사리 바뀌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숨통은 틔워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많다. 내심 내 아이가 저렇게 커주었으면 싶을 정도로 견실하게 잘 성장한 경우다. 고백하건대, 부모보다 자녀가 더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저 성적이 좋다거나 신체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고등학생답다'고 말하는 경우는, 자신의 진로가 명확하게 설정되어있어 공부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는 아이다. 그런 아이들은 비록 지금 성적은 낮아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부모와 교사의 지지와 격려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낮다는 사실에만 집착한다. 대학입시 한 방에 자녀의 인생이 달려있다는 오랜 편견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꽉 막힌 경우지만, 요즘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다음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해보라는 거다. 공부는 잘하지만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인 아이와, 진로는 확고한데 성적이 낮은 아이 중 당신의 자녀가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냐고.

오늘 저녁도 한 학부모와의 상담 예약이 잡혀있다. 당신의 자녀에 관한 성적표와 자기소개서를 뒤적여가며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 관계도 원만하고 성적도 괜찮은데다 학교활동에도 적극적인 아이다. 굳이 학부모가 담임교사와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경우다. 정작 상담이 필요하다 싶은 학부모는 관심이 없고, 애꿎은 분들만 학교를 찾는 것 같다.

아무튼 부러 만나고 싶다는 학부모를 막을 순 없지만, 부디 성적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수능 점수와 내신 등급별 지원 가능 대학이 어딘지 메모하고 기억하는 게 과연 교사가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비록 헛된 바람일지언정 학부모로부터 '아이가 학교에서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다 올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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