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기

샤를 8세는 루이 11세 ...

육아일기 0 204 2017.03.21 20:17


샤를 8세는 루이 1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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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8세는 루이 11세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샤를은 유년기를 그의 아버지가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앙부아즈 성에서 지냈다. 루이 11세는 1483년에 사망하였고, 샤를 8세는 겨우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지만 국가를 경영해 나갈 능력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1492년까지는 그의 누나인 안 드 보주가 국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491년 샤를 8세는 이미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1세와 약혼하였던 브로타뉴 여공작 안와 결혼하였다. 1492년, 당시 샤를 8세가 22살일 때 그가 총애하던 신하인 에티엔 드 베스의 조언에 따라 누나 안의 간섭에서 벗어났다.

권력을 차지하자, 샤를 8세는 이탈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는 나폴리 왕국의 앙주 왕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빌미로 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이 때부터 대포가 유럽의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1] 결국 1495년 2월 22일 프랑스군은 나폴리에 입성하고 샤를 8세는 5월 12일 나폴리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밀라노오스트리아베네치아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이러한 프랑스군의 약진에 위협을 느끼고,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반 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결국에는 동맹군이 포르노보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하여 샤를은 프랑스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샤를은 이탈리아 원정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프랑스의 빚이 너무 많아 뜻을 이룰 수 없었다. 1498년 4월 7일 샤를 8세는 앙부아즈 성에서 사망하였다. 샤를의 아이들은 모두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왕위는 오를레앙 공작 루이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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